강경미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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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이 다리가 놓여 있는 하천을 미하(渼河)라고 부른 데서 다리이름을 미내다리[渼奈橋]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미내라는 승려가 시주를 받아서 만들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연유하였다는 기록이 비문에 남아 있다.
또, ≪동국여지승람≫에는 “예전에 다리가 있었는데 조수가 물러가면 바위가 보인다고 해서 조암교(潮巖橋) 또는 미교(渼橋)라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 다리는 3개의 홍예(虹霓 : 무지개모양)로 된 돌다리인데 가운데 홍예가 가장 크고 남북쪽의 것이 작다.
받침을 긴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에 홍예석을 둘렀으며, 가운데 홍예의 종석은 다리난간쪽으로 돌출시켜 호랑이머리를 조각하였다. 북쪽 홍예는 용머리를 새긴 종석이 있고 난간 경계석에는 여러 가지 꽃무늬를 새긴 듯하나 마멸이 심하다.
몇 ㎞ 떨어진 원목다리와 형태는 거의 같으나 이 다리가 더 크고 우람하며 치석(治石)이 정교하다. 다리 앞에는 커다란 암반이 있는데 여기에 원래 화강암제의 은진미교비(恩津渼橋碑)가 있었으나 파괴되어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중이다.
비문에 의하면 1731년(영조 7) 강경촌에 살던 석설산(石雪山) 송만운(宋萬雲) 등이 주동이 되어 황산의 유승업(柳承業) 설우(雪遇)·청원(淸元) 등이 이 공사에 진력하여 시작한 지 1년이 못되어 완성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 중의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충청남도, 1996)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