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곶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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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소재한 조선시대 다리.
1967년 12월 15일 사적 제16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12월 23일 보물 제1738호로 승격되었다.
한천(漢川:현재의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 한강을 약 2km 앞둔 곳에 놓여졌으며, 현재의 서울 성동구 행당동과 성수동의 경계에 있다. 조선시대의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하며 원래 이름은 제반교(濟盤橋)였고 일명 살곶이다리라고 한다.
1420년(세종 3) 세종의 명령으로 영의정 유정현(柳廷顯)과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이 감독하여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강의 너비가 너무 넓고 홍수를 이겨내지 못해 교기(橋基)만 세우고 중지하였다가 63년 후인 1483년(성종 14)에 완성하였다. 길이 78m(258尺) 너비 6m(20尺)였다. 높이 1.2m인 기둥을 네 줄로 세운 위에 받침돌을 올리고 대청마루를 깔듯 세 줄의 판석을 빈틈없이 깔았다. 가운데 두 줄의 교각을 낮게 하여 다리의 중량을 안으로 모았으며, 돌 기둥에 무수한 흠집을 새겨놓아 물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도성에서 동남쪽으로 경상도 봉화(奉化)에 이르는 간선로(幹線路) 위에 놓여 있었다. 즉 동대문이나 광희문(光熙門)을 통해 도성을 벗어난 후 만나는 큰다리로서 그 후 송파진(松坡津)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충주 방면으로 연결되었다. 국왕이 군사훈련 참관 등을 위해 뚝섬[纛島]으로 행차할 때도 이용하였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때 다리 절반의 석재를 가져다 쓴 후 버려져 있었는데, 1972년 서울시에서 복원하였으나 원형 그대로 복구되지는 못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